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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를 업으로 삼으려는 과정들 속에서

kenasdev 2023. 3. 4.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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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졸업장이 부끄럽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CS쪽을 공부해왔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이력서에 ‘컴퓨터공학 전공’을 기입하는게 부끄러웠다. 엔지니어 또는 개발자가 무엇인지, 그 직함이 가진 무게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단순히 시험 잘 보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접근으로 졸업하던 시점에 쓸만한, 그리고 그럴듯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지도 못했다. 기술이라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습득했을 뿐,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보지 못했다. 졸업 전후로 데이터분야에 관심이 생겨 국비과정도 이수하고 프로젝트도 나름 진행해봤었다. 결과물은 신기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몰입하기 힘들었고 능동적으로 임하지 못했다. 분석쪽으로 커리어를 밟는게 맞는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저 미디어에서 ‘섹시한 직업, 데이터 분석가!’라는 허울에 반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더 의심하고 고민해야 했지만, 미국대학 측에서 석박사과정 오퍼를 받은게 있어 더 생각해보지 않았고, 석사과정을 준비하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배경들이 쉽게 쉽게 가려고 만든게 아닌가 싶다.

 

 

내가 끌린 것은,

오히려 해당 프로젝트를 하며 반복작업때문에 만들었던 크롤링과 분류 프로그램에 더 몰입했었다. 사용자가 2명인 프로그램이었지만, 내가 만든 결과물로 누군가 불편함을 해소했다는 뿌듯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고민을 끝으로 개발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국비라는 1회용 카드를 써버린 상황이었고, 더 이상 강의와 같은 주입식으로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개발의 어떤 도메인이든 결국 알게 될, 알아야만 하는 기술들이라고 느껴졌다. 또, 이전의 개발 경험으로 사용자와 가까운 곳에서 기여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처음엔 어떤 도메인을 목표로 할지 몰라 찍먹을 많이 했다. Kotlin과 Swift로 앱 클론코딩, 핫하다는 Flutter. 크게 와닿지 않았기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웹 기술로 방향을 잡고 무엇부터 익혀 나갈지 모색했다. 사용자에게 보이는 뷰, 로직 처리를 담당할 서버, 데이터를 저장하게 될 DB. 이 순서로 익혀나가고자 했다.

 

바닐라 자바스크립트부터 리액트와 뷰를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며 공부했다. 테트리스를 만드는걸 시작하여 여러 프로젝트를 작게 했으나, CSS를 조작해서 그럴듯하게 렌더링 하는게 고역이었다. 오히려 로직을 짜고 모듈을 나누고 컴포넌트화를 하는 작업이 더 재밌었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에 백엔드를 접하면서 ‘이거였네’ 싶었다. 나한테 맞는걸 찾은 느낌이었다.

 

 

Black Sheep Wall 마렵다 feat. Starcraft

최근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획, 개발, 배포, 그리고 개선까지의 과정을 경험했다. 프론트 다수와 백엔드/인프라는 혼자 전담 해야했다. 내가 설계한 구조와 작성한 코드가 실무 레벨에서 적절한지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었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best practice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미탐험 지역으로 검게 가려져있는 곳을 헤메는 느낌. 맵을 밝히는 치트키를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구성한 프로젝트 디렉토리 구조가 적절한지도 감을 못잡았으니.

 

가끔 스터디를 하며 만나는 백엔드 현업자에게 커피사주며 물어보거나 Stackoverflow와 같은 커뮤니티에 묻거나, github에서 star를 많이 받은 레포를 뜯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기술 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각 기술의 장단점과 구현 복잡도를 내 수준에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만 했다. 이후 머리털 난 이후 처음 인프라 분야를 접하면서 겨우 배포를 했고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참 막막했던 시간이었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방향감을 유지하는게 참 힘들었다. 선임이나 선배가 있었다면 더 편했을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민의 과정들에서 엔지니어로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몰입이라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또, 누군가 조언을 해주고 가이드를 해줬다면 ‘목적지’라고 불리워질 만한 곳에 조금 더 빠르고 쉽게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서 길을 찾고 고민의 과정을 견딜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은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서 전담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마운 행운이었다.

 

좌절 그리고 불평, 불만

채용 공고들을 보며 요구사항 정도는 충족 했다고 생각했고, 내가 쓴 기술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본격적으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도 냉담했다. 유명 구직 플랫폼 기준으로, 신입채용글이 많지 않았으며 기술스택을 필터링하면 몇 페이지도 되지 않았다. 또, 우대사항에 적혀있던 MSA, 쿠버네티스, 대용량 처리 및 분산처리 경험이 요구사항 레벨로 내려온것이 느껴졌다. 국내외로 경제상황이 좋지 못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처음엔 이러한 상황에 자존감이 극도로 깍여나갔다. 내가 이정도밖에 못되는 건지. 한편으로 고스펙을 원하는 채용시장과 불황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다 해본 경력이면 신입이 신입이 아니지 않나. 공고를 올려두고 몇주째 열람조차 하지 않는건 무엇인가. 나를 탓하든, 뭐가 되었든 탓할 대상이 필요했다. 한동안 이력서와 자소서를 업데이트하면서 정말 부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미워했고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컸다.

 

첫 발을 내딛으며, 계속 걷고 있는 이유

언제 끝날지 모를 기약없는 구직활동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높은 퀄리티의 타 포트폴리오를 보며 좌절도 참 많이 했다. 그때, 내가 왜 개발을 하고 있는지 현타가 왔다. 근본적인 질문을 했었다. 부모님이 자랑스워할만한 좋은 또는 유명한 직장에 들어가는게 내 목표였나? 그럼 그렇게 되면 내 인생에서 목표 달성했으니 그걸로 그만인가? 내가 원하던 내 모습은 그러한 1차원적 모습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지인들이 꿈에 대해 물었을 때, 늘 해오던 답변이 있다. 검색엔진에서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내 이름이 최상단에 노출되었으면 좋겠다고. 단지 권력이나 명예만을 위함이 아니었다. 김수미 간장게장처럼, 고봉민 김밥처럼, 한 명의 당당한 엔지니어로서 이름만으로도 기술적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로봇공학자하면 데니스 홍 교수님이 떠오르는 것 마냥. 거창하지만 내 꿈이니 내 것이니 어쩌겠는가. 어떻게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방법론을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나는 개발을 좋아하고 기술에 감동하며 감탄할 줄 알며 기술적인 얘기를 나눌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곤 한다. 유튜브에서 다른 분야의 기술에 대한 영상을 보면 친구들에게 막 떠들어대곤 했다. 나만 재밌는거같아서 요즘엔 눈치껏 그러지 않지만..

 

 

오히려 좋을 수 있다.

한껏 현실을 탓하고 내가 해온 것들과 현재의 ‘나’에 대해 실망하며 지냈다. 그렇게 처음을 되돌아보고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상기했다. 그러자 오히려 좋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채용시장이 얼어붙고, 신입에 대한 기대역량이 높아지고, 좋은 개발자를 뽑기 위해 기업들이 많은 고민을 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좋은 개발자의 역량을 갖추고 ‘진짜’만을 심사숙고해서 뽑겠다는 말이 된다. 그럼 내가 그 ‘진짜’가 되면 해결되는 매우 간단한 문제였다. 간단한 문제라고 했지, 쉽다고는 안했다. 나 또한 스스로 ‘진짜’ 개발자라고 할 수 있을지,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꺼낼 수 있을만큼 프로정신을 가지고 임하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불안따위의 감정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진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게 되었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 것

과거부터 경쟁률이라는 요소때문에 구직자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공을 들여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직활동을 하고, 면접에 참가하며, 코딩테스트 및 과제전형에 참가하면서 아쉬운 점이 몇 있었다.

 

기술면접도 좋은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코딩테스트와 같은 전형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이후 연락이 없거나 최종 인성/컬쳐핏 면접을 앞두고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적이 있다. 심한 경우에는 ‘채용과정 전 설문과제 전형’이라는 이름의 전형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회사 내부사정 및 기술적 역량 부족과 같은 이유로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고 최악의 채용 프로세스 경험으로 남아있다.

 

현 상황과 기업의 입장도 응당 이해한다. 사람인 기준 중소기업 개발직무 공고에 경쟁률이 평균 1:150이었다. (분명한 통계를 낸건 아니며, 상시채용은 지원자가 많을 수 있긴 하다.) 지원자가 50명이 넘어가더라도 그들의 모든 이력서를 검토하기 힘들것이다. 게다가, 채용전형에 대한 결과가 1달 심하면 2달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희망하는 회사의 지원자라면, 그 회사가 회신을 줄때까지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면접을 봤던 회사 중 합불 여부를 떠나 피드백과 함께 전달을 드릴거라는 회사가 있었다. 그러한 인사팀의 노력이 보였고, 그러한 회사라면 내부에서도 노력을 많이 할것이라 생각되어 가고 싶었던 회사였기도 했다. 기술면접에서도 좋은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마무리하며 특정 시일내에 피드백과 함께 결과를 약속했다. 언급했던 최대 기한이 지난 후 피드백 없이 불합격 결과를 받았다. 합격에 이유가 한개라면 불합격의 이유는 너무도 많다. 그렇기에 결과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덤덤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면접자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부정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최종에 가까운 전형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불합격한 지원자는 역량이 부족하거나 결이 안맞거나, 또는 내부 사정으로 채용이 취소되었을 수도 있다. 지원자는 영문도 모른 채, 어떤 방향으로 더 성장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열정만 쏟아붓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기업을 탓할 수는 없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하지만, 다음 기회에 모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는 귀사의 역량이 부족하여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복붙 멘트가 전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부분에 진정성을 바란다는게 어불성설일 수 있다. 하지만 지원자를 배려하기 위한 멘트라면, 그러한 의도를 가졌다면, 내부적으로 진행되었던 평가에 대한 일부분만이라도 피드백으로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원자는 냉철한 평가로 인한 좌절보다 온정으로 포장된 차가운 거절로 인해 더 의욕을 상실하게 될 지 모른다.

 

 

 

반박 시 당신이 옳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내 구직 생활 속에서 느낀 점과 다시 한 번 초심으로 회귀하기 위해 끄적였다. 개인에 따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수 있고, 내가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대해 유난을 떠는 것 일수도 있다. 지원자에 대한 피드백 또한 개인적 희망일 뿐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부분임을 분명 인지하고 있다. 스스로도 탈락에 대한 이유에 짐작하고 있으며 담담히 수용하고자 한다.(아마 기술적 역량의 부족일거라..) 탈락의 연속에 대해 괜한 불평과 불만, 혹은 핑곗거리 따위를 만들어 옹졸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준비의 과정을 지원해주며 응원해주는 가족과 지인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든, 나는 내가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자 한다. 혹, 미래의 내가 엔지니어가 된 후로 해이해졌다면 부디 이 글을 다시 보며, 얼마나 그 직함을 받으려 고뇌하며 갈망 했었는지 상기하길 희망한다.

 

기술 블로그에는 사담은 남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며 절망이라는 늪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우연히라도 이 글을 보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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